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 위치한 대곡문중. 종손인 권대용씨의 조부인 권기일은 일제 침략 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항일투쟁에 나섰을 뿐 아니라 조선중기 임진왜란이 발발한 당시에도 문중 종손 권전(1549-1598)이 이순신 휘하의 장수로서 해전에 참전, 왜군을 바다에 수장시키는 등 호국충절의 명문가이다.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권 전의 묘소에 있는 비문에 따르면 조선 중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마애 권예(1495-1549)의 맏손자인 권전은 선조 15년(1582)에 무과(武科)에 급제한 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의 휘하로 들어 가 만호라는 벼슬을 받고 판옥선 함장에 임명된다. 그는 옥포, 사천, 당포, 명량 등 해전마다 왜군을 수장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다가 나중에 아장(亞將.준장군)이 된다. 이순신 장군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되면서 그는 조선수군의 전략과 전술을 창의적으로 개발하고 수하 장수들의 선임으로 활약했다. 12척의 판옥선으로 노량해전에 나서 왜군 전함 5백여척을 격파, 세계 해전사에 기록되는 승전으로 이끄는데 끝까지 고군분투하고 장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그의 나이 오십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약 300년 뒤 또 다시 문중 종손이 항일투쟁에 뛰어 든다. 1910년 일제가 군사력을 앞세워 조선을 강점하자 당시 대곡문중의 종손인 권기일은 천석에 이르는 전답과 종가집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소요되는 군자금을 마련, 이듬해인 1911년 3월 식솔들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갔다. 만주 통화현에서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을 도와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 설립자금을 대고 본격적인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다. 이곳에서 훈련된 약 3천여명의 독립군은 나중에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는 등 독립운동 청사에 길이 빛나는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대곡 문중은 안동시 정상동 소재 5천여 평에 이르는 안동종가음식체험관인 예미정을 관리 운영하고 있다.
